전날에 많이 마셔서 그런지 몸이 찌뿌둥했지만 일어나서 조식을 먹고 씻고 10시 반쯤 숙소를 나섰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일단 오비히로역 내 2층 관광안내센터로 가서 도움을 받아볼까 했다. 직원에게 어디가 추천지역이냐 묻자 직원은 행복역과 애국역이 괜찮다고 했다. 다만 버스 배차간격이 길다고 덧붙였다. 두 곳 사이에 거리가 멀어 행복역을 15분만에 빨리 보고 애국역에 가는 버스를 탑승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일 버스를 놓치면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단다. 고민을 했는데 결국 두 곳을 다 가기로 결심했다. 행복역이 더 멀리 떨어져 있어 행복역을 먼저 들리고나서 애국역을 들리기로 마음먹었다.

11 20분에 11번 승강장에서 60번 도카치 버스를 타고 행복역으로 향했다. 버스 창밖으로 바라본 풍경은 가로수 길 양옆에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 모습이었다. 넋없이 멍하니 바라보다 잠들었다. 도착할 때쯤 일어나 버스에서 내렸는데 행복역을 가리키는 표지판 말고 아무것도 없었다. 평야만 있을 뿐이었다. 500m 걸어가니 행복역이 보였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오비히로로 여행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행복역 덕에 오비히로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곳이라는 게 처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오타루보다 훨씬 좋게 느껴졌다. 그 이유는 이 역에 아무 것도 없어서다.

행복역에는 예전 사용됐던 철로, 승강장, 전차, 역 건물이 남아 있었다. 그 이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이상하게도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이거대로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전차 안으로 들어가자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린 신랑, 신부들 사진이 여러 개 걸려있었다. 우습게도 나도 사랑하는 사람과 여기서 결혼식을 하면 정말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 내에도 들어갔는데 이곳에 왔다는 글이 적힌 표가 천장과 벽에 빽빽이 붙어있었다. 예전 여기서 판매한 기차표를 크게 디자인 해서 이곳에 온 기념으로 사람들이 압정으로 고정시켜놓은 곳이다. 종이로 뒤덮여 있었다. 나도 표를 사서 행복은 내가 만들어나가는 거라고,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마주하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게 행복하려는 태도라는 글을 적어 천장에 압정으로 고정시켰다.

글을 쓰면서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행복하려면 그냥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 그 이상을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그냥 담담히 지금 이 순간에 욕심을 버리면 되는 게 아닌가. 어짜피 죽을 때는 빌린 내 몸이 흙이 될텐데무엇을 더 가지려고 마음에 욕심이 생기는 순간부터 고통이 시작되는 게 아니었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고. 어떤 상황이 그대로 내게 온다면 이것은 이거대로 행복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행복역은 아무 것도 없어서 사실 15분이면 다 둘러보고 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무 것도 없기에 나는 더 이곳에 있고 싶었다. 왜 행복역이라고 이름 지었을까.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행복이란 건 어쩌면 행복역처럼 아무 것도 없어야 가능한 게 아닐까 싶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 바로 무의 상태 말이다. 무언가가 비워진 상태. 무엇을 비워야 행복이 가능한 것인지. 바로 욕심이 아닌가? 나도 모르게 저절로 불교사상에 녹아들었다. 행복하려면 마음에서 욕심을 비워내고 아무 것도 없는 상태가 돼야 가능한건가? 행복역처럼?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데 그 욕심을 단절할 수 있을 것인가? 단절하려면 결국 내 의지가 필요한 문제다.

사람도 그렇다. 무엇이 번잡하고 많은 것을 가지고 화려한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보여지지 않았다. 그들을 보면 행복한 척을 하고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 물론 가진 게 없는 내 정신승리로, 또는 자기합리화로 비칠 수 있겠지만 말이다중요한 것은 별거 없어도 그냥 그대로 담담히 무엇을 받아들이면 그게 행복인 듯 싶다. 난 행복한 사람이고 싶다. 하지만 예전에는 행복하지 못했다.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싶었기에. 상황을 제대로 마주하기도 싫은 탓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한국에서 내 상황은 진짜 쓰레기였고 나 빼고 남들이 다 행복해보였다. 어쩌면 남들이 가진 것보다 남들이 행복한 것에 시기를 느껴 내 스스로 행복하지 못했다고 보일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SNS로 행복 자랑하는 인간들도 혐오스러웠고 욕심 있는 인간들도 혐오스러웠다. 결국 그건 자기혐오로 귀결됐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하고 이게 내가 내 자신을, 상대방을, 사랑을 갈가리 찢어 버리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새로운 인연을 만나면 다시 새로운 사랑을 했다. 웃긴 것은 또 그거대로 반복이었다. 이별을 겪을수록 쌓여만 가는 것은 인간에 대한 혐오감이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다가 오면 새로운 사랑을 이어나갔다. 결국 그 사랑도 문드러졌다. 나는 사랑 체질이 아닌가 싶었다. 사랑은 내 상황에 있어서 맞지 않는 듯했다. 그러기에 사랑을 잠시 중단했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았다. 내 스스로 변화가 필요해서 홋카이도로 도망쳤다. 내 안에 있는 혐오감 좀 없애보려고.

한국에 오면 사랑을 다시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간 돌이켜보면 상처를 많이 줬고 받고 했었으니까. 이제 남한테 상처주는 게 겁나서 사랑하는 것도 조금은 겁이 난다. 행복역에 와서 지난 과거를 돌이키는 게 참 불편하면서도 반가웠다.

조금 염려스러운 것은 내년에 과연 한국에 와서 내가 어떤 모습인지, 바뀌었는지 그게 참 관건이다. 설사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도 행복하고 사랑할 수 있을지. 예전에 행복해지기 위해서 사랑했었다면 이제는 사랑하기 위해서 행복해지고 싶다.

떠나보낸 사랑도 결국 내가 행복하지 않았기에 비롯됐다. 사랑하려면 내가 행복해야 한다. 내가 행복해야 상대방을 행복하게 할 수 있으니까. 그게 사랑이니까. 20대를 돌이켜보면 그간 난 사랑할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내가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젠 자격을 갖출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기차에 앉아 있으면서 버스가 올 시간이 돼서야 자리에 일어섰다. 버스를 타고 이제 애국역으로 향했다. 버스에 내린 후 얼마 안가 애국역에 도착했다. 행복역에서 강한 인상을 받아서 그런지 몰라도 애국역은 별로 볼 것이 없었다. 한바퀴 쭉 둘러보고 근처 편의점에서 커피 한잔을 사 마신 뒤 다시 버스를 타고 오비히로역에 도착했다. 너무 배고파 인디안 카레에서 밥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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