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는 나와 닮았다. 도쿄, 교토, 오사카, 나고야 등 일본 대도시가 있는 혼슈와 따로 떨어졌고 역사적으로 발전이 늦게 된 섬이라는 점에서다. 살면서 중심에 머물렀던 일은 드물었다. 애써서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고 따로 떨어진 주변부 사람인게 마음은 편했다. 발전도 더뎠다. 유행에 민감하지도 않았고 또래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정보는 항상 늦게 접했다. 어렸을 적 말도 세돌이 지나서야 했다니 말 다한 셈이다.

자라면서 말주변이 많이 없다보니 차라리 글로 생각을 정리하는 게 익숙했다. 대학교 졸업반 때 글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고 운 좋게 졸업하고 나서 기자직에 취직해 사회로 나아갔다. 사회인이 됐지만 사회의 기준에 못미치는 성향을 가진 내가 한국 사회 특유의 문화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다. 직장인이 된 내 자신이 안쓰러웠다.

첫직장을 관두고 인생 처음으로 일본 여행을 가고 싶었다. 어느 지역을 갈까 고민하다가 홋카이도로 정했다. 때는 여름이었다. 남들은 오사카, 도쿄를 주로 가는데 왜 그 지역에 가냐는 의문을 내게 던졌다. 그곳은 겨울에 가는 데라면서. 그런 말을 들으니 왠지 홋카이도로 더 가고 싶은 오기가 발동했다. 충분히 괜찮단 걸 스스로 느껴보고 싶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과거 대학생 때 일본 워홀을 가고 싶다는 욕망이 일었다. 다시 돈을 모아야 겠다고 결심해 5개월간 취업 준비를 하고 두 번째 직장에 입사했다. 물론 입사할 때부터 퇴사 생각은 없었다. 사람 일이란 건 어찌될 지 모르기에 여기서 잘 하면 어엿한 직장인이 돼 워홀 생각은 사라지고 단순히 짧은 해외 여행만 가도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입사 약 6개월 후 결과는 다시 패배였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난 그냥 사회부적응자인 게 틀림 없다고 느꼈다. 여기서 1년만 버티고 퇴직금을 받고 일본 워홀을 통해서 나를 사색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을 긴히 갖고 싶었다. 퇴사하기 세달 전부터 워홀 신청 서류를 준비했다. 동시에 일도 해야 했기에 시간은 엄청 빠듯했다. 1월 초, 서류를 가까스로 접수하고 그 2주 후에 일본 영사관의 뜬금없는 전화 면접. 상사에게 털리고 받는 전화라 머릿속은 하얘지고 그냥 한국말로 비자 신청 자기 소개서를 읇었다. 망했다 싶었는데 2월 초에 합격이 됐단다.

그때 한 노래 가사가 생각났다. 동화 속 양치기 소년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며 계속 외쳤댔더니 늑대가 나타났다고. 대학생 때 '일본 워홀'을 외쳐대던 내가 떠올랐다. 내 자신한테 거짓말을 하지 않은 내가 꽤 대견스러웠다. 더욱이 혼자 이룬 것이기에 더욱 만족했다. 이제 곧 일본 홋카이도로 간다.

내 일본 워홀을 축하해주고 응원해준 여러 친구들에게 매우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가서 어떤 일과 사건을 마주할 지 모르겠지만 내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아가는 시간이길 스스로에게 바라고 있다. 떨림과 두려움이 9할이지만 나쁘진 않다. 언젠가 한번쯤 사람들이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인생의 전환점을 내가 자발적으로 원했으니까 기분 좋은, 뿌듯한 떨림이다. 2018년 5월 15일, 내 안에 있는 스승을 찾으러 나는 홋카이도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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